응답하라 1997, IMF 외환위기 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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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응답하라 1997, IMF 외환위기 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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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최근 들어 뉴스에서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냐'라는 뉴스를 많이 접할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불안과 염려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선 역사를 교훈 삼아 다시는 IMF 외환위기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은 1997년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공식 포스터
Source: 영화 『국가부도의 날』 공식 포스터

 

 

우선 간략하게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 한국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1800년 유럽은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당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 빠른 근대화를 통해 산업화에 성공하며 부국강병을 이루게 되었고 이를 기초 삼아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여 1876년 강화도조약을 강제 체결하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낸다. 이후 머지않아 일본은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고 조선 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조선을 통치하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다. 

 

일본은 조선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편하게 식민지화 경제 산업구조로 건설하며 조선은 체액을 빨리면서 기력이 쇠하게 되었다. 해방 직후 국가를 재정비할 시간도 없이 머지않아 6.25 전쟁이 발발한다.

 

전쟁 이후 국가 인프라와 시스템이 무너지며 아무것도 없는 한국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 일본 및 서양의 국가들은 이전부터 산업근대화를 이루며 경제 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어떻게 일어설 수 있었을까?

당시 자본도, 기술도 없는 한국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조금 극단적인 길을 걷게 된다. 그것은 바로 국가 주도하에 경제를 육성하고 특히 대기업을 키우는데 국력을 집중하게 된다. 당시 정부는 엄청나게 뒤처져 있는 한국 경제를 급성장시키기 위해 대기업을 키워 국가 경쟁력을 갖추려고 했다.

 

 

 

한국은 어떻게 국력을 몰아줬을까?

해방이 되면서 일본이 버리고 간 적산, 예를 들어 땅이나 공장들을 지금의 대기업한테 헐값에 매각한다. 또한 상당 부분의 미국이 지원해준 물자원조가 대기업으로 흘러가며  정말 물심양면 대기업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이 결과 한국형 재벌이 탄생하고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조업을 육성하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출 중심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더욱더 한국의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원초적인 전략을 고수한다. 그것은 바로 원가절감이었다. 

 

제품의 원가를 낮추기 위해 제일 빠르고 쉬운 방법은 인건비였으며 정부는 저임금 정책을 실시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한 급속한 자본 축적과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 3권을 물리력으로 억압하였다.

 

이러한 억압 속에 당연히 노동자들 엄청나게 불만이 많았고 통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의 열약한 현실을 알리고자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22세의 나이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이와 같이 국민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군사 독재라는 정치 형태가 고착이 되었다. 물론 외형적인 성과는 분명히 컸지만 이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경제성장이었다. 시간이 지나 군사정부를 몰아내고 문민정부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다.

 

여기서 말하는 문민정부는 군인 출신이 아닌 일반 국민이 수립한 정부라는 뜻으로 이전의 군사 출신 정권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당시 세계경제의 흐름은?

80년대에는 제조업의 시대였고 당시 일본은 제품의 좋은 품질, 저렴한 인건비, 엔저를 바탕 삼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는 중이었다.

 

제조업에서 밀린 미국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금융업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모든 국가가 자본 시장을 활짝 개방하고 글로벌 금융 경제에 참여하게끔 만들었다.

 

새로 들어선 문민정부는 군정 시절에 이룬 경제 성과보다 더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있었는지 겉치레적인 타이틀에 집착하게 된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 경제에 참여하게 되며 부자들만 가입한다는 OECD에  1996년 12월 12일 가입에 성공한다

 

내실이 탄탄하지 않은 졸부 나라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본주의를 가다듬은 부자 나라들을 코스프레하기 시작했다. 대책 없이 문을 열고 글로벌 금융 경제를 들인 것이다. 국가 주도형 성장을 했던 군정 시정과 달리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는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자유시장경제의 노선을 취하는 차별성을 뒀다.

 

세계 경제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금융 자본을 들인 것은 필연적이었으나 당시 한국은 금융이나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없이 너무 급하고 안일하게 금융 경제를 받아들였다.

 

자유는 건전한 시스템 위에서 더 작동을 잘하지만 당시 한국은 최소한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유가 아니라 방치였다. 기업들은 정말 방만한 경영을 하게 되며 전형적인 문어발식 사업을 무분별하게 확장한다. 

 

사업 확장에 투입된 자금은 모두 대출(빚)로 굴러가는 사업이었으며 이는 국가와 은행이 관리 및 규제 없이 너무 쉽게 대출을 해주는 사회 분위를 반영한다.

 

무분별한 기업의 사업 확장은 핵심 투자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여기저기 문어발식 투자를 하면서 역량이 분산되었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추세였으며 적자가 나는 계열사가 수두룩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은행은 기업한테 묻지도 따지지 않고 돈을 빌려줬으며 정부는 기업의 뒤를 봐주기 급급했다. 결국 국가 전체가 빚으로 잔치를 벌인 격이다.

 

 

 

당시 한국의 무역수지는?

방만한 경영이 지속되면서 한국의 제품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며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결과를 낳게 된다. 즉,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나가는 달러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면 되지만 이 방법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당시 한국은 외국에 빚이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라 원화가치를 떨어뜨린다면 갚아야 할 빚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좋지 못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대책 없이 방치했다. 머지않아 태국발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며 도미노처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까지 경제위기가 발생한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 시장 마저 신뢰를 잃게 되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꺼번에 막대한 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아시아의 용,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던 한국은 갑자기 상황이 180도 바뀌면서 빚으로 굴러가던 경제에서 빚을 회수하기 시작하니 나라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환시장에서 부족해지는 달러로 인해 환율이 상승하는 것을 보고 한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풀며 원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미친 듯이 팔았다.

 

하지만 자본의 유출 속도는 더욱더 빨랐으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의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국가의 외환보유고 또한 거덜 나게 되면서 해외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며 물건을 수입할 때 대금을 치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결국 국제통화기금에(IMF) 도움을 요청하며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지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은 공짜가 아니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사실상 국가의 경제적 주권을 박탈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현재 한국은 제2의 외환위기?

9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한국은 상당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도 보유하고 있으며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도와 관리감독이 과거에 비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다음 아래와 같다.

 

  1. 자살률 
  2. 저출산
  3. 고령화
  4. 국가 & 가계 빚의 규모 및 증가속도
  5. 무역적자
  6. 글로벌 경기 침체
  7. 달러의 가파른 가치 상승
  8. 국내 금리 상승
  9. 물가상승
  10. 주변 국가의 외교 불확실성 및 리스크

 

위와 같은 문제는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간략하게 나열한 것이다. 한국은 수출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이며 현재도 자원이 없는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봤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한국의 1997년 IMF 외환위기 역사를 보면 잠들어 있던 구조적인 리스크가 아시아 금융위기가 기폭제가 되어 터져 버린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용,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한국이 단 한순간에 경제위기를 맞는 아픔을 겪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절대 일어나지 않아' , '절대 아닐 거야'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그 어느 시기보다 대외 리스크 및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과연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제위기 3高를 대하는 입장이 미묘하게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신감을 내비치며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기존에 자신감을 내비치며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정부와 중앙은행은 미묘하게 스탠스를 바꾸며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 IMF 외환위기 같은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테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역사는 곧 미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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